국립국어원의 우리말 다듬기를 곱게 보지 않는 이유

어제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갔다가 이런 배너를 봤다.

“QR코드는 정보무늬로 다듬었습니다.”

이런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나의 트윗을 보고 한 지인께서 괜찮은 데 불만이 뭐냐고 하셔서 블로그에 정리한다(사실 국어교육학을 전공한 동생과 같은 이유로 논쟁을 한 후, 그 때 포스팅 하려고 했는데 게을러 안하고 있었다).

내가 외래어에 대해 혼란스러워 할 때 이 글을 읽고 생각을 정리했다. 이미 1939년에 이 부분에 대해 지적을 했던 이태준님의 ‘문장강화(창작과 비평사, 초판 23쇄)’라는 책의 ‘제 2강. 문장과 언어의 제문제: 1. 한 언어의 범위’ 일부를 옮겨왔다.

이 문장에서 클락, 캡, 트라비아타, 호텔, 커피, 코스 등의 외래어를 굳이 안 쓴다고 해보라. 이 외에 무슨 말로 ‘그’라는 현대인의 생활을 묘사해 낼 것인가? 만일 춘향이라도 그가 현대의 여성이라면 그도 머리를 퍼머넨트로 지질 것이요 코티를 바르고 파라솔을 받고 초콜렛, 아이스크림 같은 것을 먹을 것이다. “흑운같은 검은 머리, 반달 같은 와룡소소 솰솰 빗겨 전반같이 넓게 땋아…….”나 “초록갑사 곁막이” “초록우단 수운혜” 이런 말들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새 말을 만들고, 새 말을 쓰는 것은 유행이 아니라 유행 이상 엄숙하게, 생활에 필요하니까 나타나는 사실임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커피를 먹는 생활부터가 생기고, 퍼머넨트 식으로 머리를 지지는 생활부터가 생기니까 거기에 적응한 말 즉 커피, 퍼머넨트가 생기는 것이다. 교통이 발달되어 문화의 교류가 밀접하면 밀접할수록 신어가 많이 생길 것은 정한 이치로 어디 말이 와서든지 음과 의의가 그대로 차용되게 될 경우에는 그 말은 벌써 외국어가 아닌 것이다. 한자어든 영자어든 괘념할 필요가 없다. 그 단어가 들지 않고는 자연스럽고 적확한 표현이 불가능할 경우엔 그 말들은 이미 여깃말로 여겨 안심하고 쓸 것이다.

물론 이 책에는 무분별한 외래어의 남용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신어의 남용으로, 넉넉히 표현할 수 있는 말에까지 버릇처럼 외국어를 꺼낼 필요는 없다. 신어를 남용하는 문장에 있어선 물론, 담화에 있어서도 어조의 천연스럽지 못한 것으로 보나 현학이 되는 것으로보나 다 품위 있는 표현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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