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가요'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7/06/23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21회)
2007/06/23 14:31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21회)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MBC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2000년 8월 20일 (일) / 제 21 회

'금기의 시대 - 건전가요와 금지곡'

■ 기획의도
1975년 5월 긴급조치 9호가 발표되면서 대중가요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이 이루어진다. 이른바 '노래의 분서갱유(焚書坑儒)'이다. 허락 받은 노래만 불러야 하고 허락 받지 않는 노래를 부르면 큰일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 반대쪽에는 정부에서 적극 권장하는 이른바 '건전가요'가 있다. 이 프로그램은 권위주의적 정부의 대중조작이 노래의 양 축, 즉 건전가요와 금지곡으로 나타났다는 전제에서 출발해, 유신 이후 70년대의 문화정책을 해부한다. 그럼으로써 건전가요와 금지곡이 단순히 건전한 대중문화 진작 차원이 아니라, 당시 강력하게 추진되던 '국민의 의식과 정신개혁'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지향하고 있음을 밝힌다.

■ 프로그램 내용

▲ 청바지, 생맥주, 통기타 그리고 노래하는 전사들

학교의 병영화를 시도하려했던 69년 교련실시, 71년부터 대학 안에 장갑차를 밀고 들어왔던 위수령,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 그리고 긴급조치, 75년 4월의 인혁당 사건과 김상진 열사 할복 사건에 이르기까지 70년대는 누구보다도 청년들에게 갑갑하고 암울한 시기였다. 앞뒤로 꽉꽉 막혀버린 흑백의 70년대… 그러나 그 시대에도 꿈틀거리는 총천연색 젊음은 숨을 쉬고 있었다. 청바지, 생맥주, 통기타로 대변되는 70년대 청년문화, 전후 세대였던 청년문화의 주인공들은 고도성장에만 세뇌되어 있던 부모세대와 사회 분위기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유신으로 이름 지워진 사각의 밀실에서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힘없는 바보들의 행진만 계속할 수밖에 없었을까…

예비군이 창설되고 교련이 시작되던 1968년, 완벽한 히피 한대수가 기타를 메고 대한민국으로 돌아온다. '물 좀 주소!'를 외치며 한국 포크의 출발을 알렸던 그의 음악은 가문 땅이 물을 빨아들이듯 새로운 것과 자유에 목말라하던 한국의 청년들에게 속속들이 퍼져나가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청년문화의 리더 김민기, 양희은, 이장희, 이정선, 신중현… 당시 청년들과 똑같은 청바지와 장발을 한 이들은 노래로써 청년들의 갈증을 해소시킨다.
이들의 노래는 사랑노래이기보다는, 은유적이지만 사회 현실에 대한 발언, 자기 성찰을 담고 있다. 씩씩하고 진취적인 기상을 요구했던 당시 정부에 이들의 노래가 불온하게 비쳤던 것은 당연한 일.

▲취재진이 발굴한 유신의 노래들...

취재팀은 1972년 유신을 전후로 전국의 초등학교에 불리워졌던 노래들을 발굴했다. 유신을 구국의 결단으로, 박정희를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선전하고 찬양하는 노래들이다. '달 달 무슨 달…'노래의 가락에 가사를 바꾼 것이다.

    일하시는 대통령
    이 나라의 지도자
    삼일정신 받들어
    사랑하는 겨레 위해
    오일육 이룩하니
    육대주에 빛나고
    칠십 년대 번영은
    팔도 강산 뻗쳤네
    구국의 새 역사는
    시월 유신 정신으로

'산토끼' 노래에 가사를 바꾼 것으로는
   <새 시대, 새 체제, 잘 살기 위한 길, 빠짐없는 투표로 항도 부산 빛내자>
   <10.17 유신은 김유신 같아서 삼국통일 되듯이 남북통일 되지요>

▲ 신중현이 '아름다운 강산'을 작곡하게 된 이유는?

영원한 한국 락의 대부 신중현이 털어놓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1970년대 초반 이미 명성을 얻은 신중현에게 청와대에서 '대통령 찬가'를 만들라는 부탁을 해왔지만 그는 정중하게 거절한다. 다음에는 공화당에서 협박조의 전화를 받는다. 그는 이번에도 거절했는데, 그 이유는 음악이 권력자 개인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때문이었다. 그 후 그는 일주일동안 칩거하면서 '아름다운 강산'을 만들어낸다. 히트송 몇 개 만들어 낸 대중작곡가라고 얕잡아 보는 것 같아 '나 이런 사람이오'하고 보여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노래는 국민들의 재산이어야 한다는 소신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명곡으로 꼽히는 '아름다운 강산'도 75년 연주되거나 불려질 수 없는 노래가 되어버리고 만다.

▲ '새마을 노래', '나의 조국'은 왜색?

정부는 문화공보부에 '건전가요 개창운동'부서를 만들어 사회와 정권에 '건전한' 대중들을 생산해내려 시도한다. 금지곡과 건전가요는 박정희 정부의 '당근과 채찍'이다. 그는 몸소 건전가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79년 애국가요로도 선정된 '새마을 노래'와 '나의 조국'은 모두 박정희 대통령이 작사 작곡한 노래이다. 건전가요의 전범으로 받아들여진 이 노래들은 사실 왜색조의 노래들이다. 7음계에서 4번째와 7번째 음을 뺀 '요나누끼 음계'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70년대는 일제시대에 교육을 받고 일제의 군사문화에 강력하게 영향을 받은 박대통령을 통해 한국민의 음감은 다시 왜색화되어간 시기이기도 하다. 금지곡의 사유가 상당수 '왜색풍'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 국민교육헌장은 일본의 '교육칙어' 본딴 것'

'국민교육헌장의 노래'
1968년 12월 5일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교육헌장을 발표한다. 그것은 일본 메이지 유신 때 제정된 '교육칙어'를 본딴 것. 학생들에게 강제적으로 외우게 하고 모든 공식행사에서 낭독하게 하는 등 일제시대의 방침을 그대로 따른다. 일제 시대에 교육을 받았던 박정희의 구상에 따라 문교부가 학자들을 동원해 만든 것, 그때의 비화를 소개한다.
그리고 헌장의 보급을 위해 국민교육헌장을 노래로 만들었다. 작곡자가 이인재로 되어 있는 이 노래는 문교부에서 국민교육헌장 생활화의 일환으로 제정한 것이다.
국민교육헌장 선포는 '국민정신개혁' 계획이 진행되어 가는 첫 단계가 된다. 대대적으로 전개된 헌장의 암송대회와 웅변대회, 당시 학생이라면 외우지 않으면 안됐던 국민교육헌장은 국민정신개혁을 이루겠다는 정권의 의지를 실현하는 기본적이고도 강력한 도구였다.

▲ 노래 대학살

75년 긴급조치 9호로 대중들은 귀와 입을 빼앗긴다. 유신체제의 최절정기에 이른 정부에서는 75년 6월 공연정화대책을 발표하고 3차에 걸쳐 222곡이라는 금지곡을 선고한다. 한국 가요계는 30년은 후퇴한다
이 글과 관련된 글
받은 트랙백이 없고 댓글이 없습니다.

트랙백 : http://blog.edple.com/trackback/426